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인들이 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이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세계 3대 악처들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Все счастливые семьи похожи друг на друга, каждая несчастливая семья несчастлива по-своему.
무슨 말일까요? 모르시겠다면, 어느 나라의 언어일까요? 🙂
사실은 저도 몰라서 검색해보니까 러시아어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톨스토이의 걸작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세계 3대 악처 Best 3
–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의 아내 ‘몰리 바젤리’
47세 노총각인 웨슬리가 런던 다리에서 부상을 당하여 4명인 자녀를 둔 과부 몰리 바젤리의 집에서 간호를 받으면서 그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혼하게 됩니다. 이렇게 요한 웨슬리와 메리의 만남과 출발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목회자인 웨슬리는 몰리로부터 늘 여자관계를 의심받았고, 때로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들볶는 아내의 행태를 견디다 못해 결국 별거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가장 지탄을 받는 메리의 행동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웨슬리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질질 끌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웨슬리는 감리교의 창시자이고 복음전도사이니까 그 모든 공로를 아내에게 돌리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만약 나의 부인이 훌륭한 아내였더라면 내 자신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위대한 사역에 충성을 다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3대 악처 Best 2
– 공자의 아내 ‘올관씨’
공자의 아내는 못생긴 외모에 성격까지 괴팍하다고 알려져 남편인 공자 못지않게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역사서에 공자에 대한 언급은 많지만 올관씨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어서 전해진 얘기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공자가 19세에 올관씨와 혼인하고 20세에 아들 ‘리’를 낳았는데요, 어느 시점에 공자가 아내를 쫓아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올관씨가 죽고 아들 ‘리’가 곡을 하자 절제가 없다는 이유를 아들을 야단쳤다고 합니다.
천하를 다스리는데만 관심이 있었던 공자의 입장에서는 아내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세계 3대 악처에 올관씨의 이름이 남아 있지만, 어쩌면 공자를 맹종하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야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측면에서 접근을 한다면,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빌미로 13년간 천하를 주유했던 건 아닐까요? (물론, 제 억측입니다)
공자도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여인과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한을 품는다.”
세계 3대 악처 Best 1
–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소크라테스는 누가 뭐라해도 성인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원전 5세기에는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자연스럽게 집에 친구들, 제자들이 자주 방문하자 화가 난 크산티페가 테스형의 머리 위에 물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성인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테스형 왈 : “벼락 뒤에는 비가 내리기 마련이지.”
주위 사람들이 테스형에게 “용케도 부인의 잔소리를 참아 넘기십니다.”라고 하자,
테스형 왈 : ‘물레방아 소리도 자꾸 들으면 시끄럽지 않지.”
역시 테스형님이십니다. 🙂
이 외에도 테스형의 해학이 담긴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반드시 결혼하세요. 좋은 아내를 가지면 행복해질 수 있고, 나쁜 아내를 가지면 나처럼 철학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꼭 알고 계셔야 되는 내용이 있는데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크산티페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희극 「구름」에서 크산티페를 악처로 묘사하면서 역사에 악처라는 이름을 남겼다고 합니다.
악처들이 3명 밖에 없나요?
강태공의 아내 ‘마씨’
주나라에서 4대에 걸쳐 국사를 지냈던 강태공이 남긴 명언이 하나 있습니다.
“복수불반분”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이 말은 강태공이 주문왕을 만나기 전 생활고를 견디다 못하고 떠난 마씨가 강태공이 제나라 왕이 되었을 때 돌아와서 다시 아내로 맞아주길 간청했을 때, 항아리의 물을 바닥에 쏟아붓고 그 물을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면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말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다만, 낚시를 소일거리로 삼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남편을 보고 있는 것도 한 해, 두 해가 아니라 평생이 되어버린다면 그 상황을 끝끝내 참아낼 수 있는 현모양처들이 얼마나 될까요?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82세의 톨스토이는 가출한 지 열흘 만에 아스타포보 역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되는데요, 그의 아내 소피아가 남편을 내쫓아 죽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희대의 악처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3명의 아들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루에 5시간 이상 충분한 수면을 취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톨스토이의 악필을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소피아였고,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 등은 그녀의 손을 거쳐서 출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콘스탄체의 주위 사람들이 남긴 편지에는 콘스탄체가 교양있고, 가사에도 열심인 쾌활한 여자라는 합니다. 하지만, 낭비벽이 심한 편이었고 모차르트 사후 6명의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모차르트의 악보와 서간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덴마크 귀족과 재혼했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악처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기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콘스탄체가 세계 3대 악처에 포함되는 경우도 종종 있답니다.
하이든의 아내 ‘마리아’
마리아는 그녀의 일평생을 남편 하이든을 괴롭히는데 전념했다고 합니다. 하이든의 악보를 포장지로 머리카락을 마는 종이로, 음식 밑받침으로 쓸 정도로 음악이라면 질색이었습니다. 게다가 낭비벽도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하이든은 그녀를 ‘지옥의 짐승’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바하와 슈만의 아내를 제외하고는 음악가의 아내들 중 거의 대부분이 악처라고 합니다. 우리는 결과물만 들어서 그 창작의 과정과 고통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링컨 대통령의 아내 ‘메리’
메리 역시 질투와 낭비벽의 화신으로 링컨이 죽은 뒤 빚을 피해 유럽으로 피신했지만 결국 낭비벽을 고치지 못하고 파산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아들이 메리를 정신이상자로 거짓 증언하면서 파산은 모면했지만 미국 제16대 대통령이 링컨의 옆자리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영의정 송질의 아내
조선 중종 때 영의정 송질은 아내의 눈치를 살피느라 평생 기생의 수청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여종의 손을 잡고 입맞춤하는 모습이 발각되었는데 다음날 아침 송질의 밥상에 올려진 것은 여종의 손목과 입술이었습니다. 우리나라만 기준으로 본다면 세계 3대 악처에 꼭 랭크되어야 할 분입니다.ㅠㅠ
한고조 유방의 아내 ‘여태후’
송질의 아내만큼이나 피도 눈물도 없었던 여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여태후입니다. 유방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항우와 유방’의 그 유방이고, 여태후는 정실부인이었지만 유방의 사후 그의 총애를 받던 애첩 척부인의 손목과 발목을 자르고 ‘인간돼지’라 부르며 돼지우리에 쳐 넣었습니다. 이 정도면 세계 3대 악처에 포함해도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총 10명의 악처들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다만, 본인도 주체하지 못하는 본성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일부 악처들은 남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두 남녀가 만나서 연애 할 때처럼 관심만 조금 기울이면 역사에 더 이상의 악처들은 생겨나지 않을 거에요. 🙂
지금까지 세계 3대 악처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소중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특히 부부 사이에~
오 악처라니 재밌는 주제입니다. ㅎㅎ 재밌게 읽었어요!
전 세계를 통틀어서 악처가 몇 명 없는 걸 보니까,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